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가장 시를 쓰기 좋은 나이”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김하진 작가, 김혜성 작곡가

 

 

원작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감독 김재환)과 에세이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북하우스, 원작자 : 김재환, 기획 : 고래방(최지은))이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7을 거쳐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에는 팔십 줄 할머니들이 문해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는 이야기를 담았다. 얼마 전 쇼케이스를 마친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의 창작자, 김하진 작가와 김혜성 작곡가를 만났다. 

 

담백한 감동 실화와 유쾌한 뮤지컬의 만남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원작 다큐멘터리와 에세이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발표된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김하진 글을 쓰다 보면 텍스트에 의미를 담아내려 하거나, 소위 예쁘고 그럴싸해 보이도록 만들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할머니들의 실제 이야기는 너무나 심플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특히 할머니들이 멋 내지 않고 쓴 시들이 좋았다. 그런 느낌을 훼손하지 않고 각색을 해야 한다는 게 고민이었다. 
김혜성 오랜만에 작업 의뢰를 받은 것도 기뻤는데, 내가 ‘인생을 재밌게 사는 사람이라서’ 캐스팅했다는 대표님 말씀이 좋았다. 하지만 원작을 보곤 ‘이거 큰일 났네’ 싶었다. 이미 영화로도 책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를 굳이 뮤지컬로 만들어야 한다면? 이 질문을 계속 스스로한테 했다. 할머니들의 시 자체가 정말 매력적인데, 괜히 음악을 붙여서 감동을 떨어트리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쇼케이스를 재밌게 준비한 만큼 관객 반응이 괜찮았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다큐멘터리나 에세이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김하진 당연히 음악이다. 파트너가 있었던 다른 팀과는 달리, IP 작가로 선정돼 계속 혼자 글을 써왔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낼 것인지, 혼자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작업 과정에 빨리 작곡가님이 합류하길 바랐다. 결과적으로 곱고 예쁜 곡들이 나왔고, 세련된 선율인데도 시골 할머니들의 정서나 분위기가 묻어나서 신기했다. 
김혜성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이대로 공연은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공연장을 찾아다녔다. 현장이 주는 매력을 실감하면서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공연은 없어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배우들한테 부탁하곤 한다. 관객분들 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연장을 찾은 사람도 있고, 이 공연을 끝으로 세상을 떠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온 힘을 다해달라고.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이 생각나는 작품인 만큼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정식 공연으로 올라간다면 다들 부모님을 모시고 극장에 오셨으면 좋겠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서 인생 첫 뮤지컬로서도 좋은 작품이다. 

 

 

이야기를 각색할 때 어느 부분에 주안점을 두었나?
김하진 작곡가님과 똑같은 고민을 했다. 왜 뮤지컬이어야 하나? 내 글이 시가 지닌 감동을 해치지는 않을까? 그러다 보니 대본을 여러 방향으로 수정하게 됐다. 인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정통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짜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컸다. 결국 에피소드 형식으로 썼는데, 이미 좋은 이야기를 굳이 인위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피드백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 그 자체를 무대 위에 내놓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의 초기 구상 단계와 최종 제출작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발전한 지점은 무엇인가?
김하진 처음부터 에피소드 형식으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쇼케이스 진출작에 선정되고 나서, 에피소드 형식이 촘촘하지 않은 것 같아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때부터 많은 수정을 거듭하다가 결국 다시 에피소드 형식으로 돌아갔다. 자꾸 극적인 요소를 만들려고 내 상상만으로 노년의 삶에 접근하다 보니 우울한 정서를 떠올렸다. 작곡가님, 연출님, 배우님들을 만난 후 이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유튜브에서 할머니들 이야기를 진짜 많이 찾아봤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드러나는 할머니들의 순수함과 유쾌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을 바꾸니 작품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쇼케이스에서 대중적이고 경쾌한 곡들을 선보였다. 넘버를 준비하면서 어떤 콘셉트와 스타일을 구상했나?
김혜성 예전에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준비하다가 작품이 엎어졌다. 그때 준비했던 곡 중 트로트들이 있었다. 그걸 살려보려고 이후에도 트로트 곡을 여러 개 썼다. “그러다 병난다”, “돈 나와라 뚝딱” 등 직접 쓴 트로트 곡의 가사랑 제목이 재밌었다. 할머니들 시에도 이런 느낌의 노래를 붙인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 나는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작업하는 타입이 아니라, 대본을 읽었을 때 오는 동물적인 감각을 중시한다. 또 동료들과 ‘오지게 재밌게’ 작업하고 관객들과도 같이 웃고 싶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번 곡들을 만들었다. 

 

함께여서 웃음이 가득했던 시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7에 참여하면서, 어떤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
김하진 최종 대본을 제출해야 했던 당일 새벽이 기억난다. 나는 IP 작가로 선정됐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결이나 콘셉트에 맞게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쓴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필요했다. 쇼케이스를 보고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처음부터 쓴 내 작품인데도 좋은 의미로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혼자 외롭게 대본을 쓰면서 나 자신을 의심했고, 지겨울 때도 있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쯤 작곡가님, 연출님, 배우님들을 만났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작품이 잘 되길 바랐다. 쇼케이스를 마친 후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더 좋은 작품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김혜성 나이 들어간다는 건 아프고 슬픈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곡 할머니들처럼 같이 모여서 무언가 배우고 별일 아닌 거에 깔깔깔 웃고, 그런 게 즐거움 아니겠나. 노력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데 오늘 하루 재밌게 사는 거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쇼케이스를 준비하면서 정말로 행복했다. 초연을 올릴 때 두근거리는 그 기쁨을 죽기 전에 몇 번이나 더 느낄 수 있을까. 그런 행복감을 관객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작업하면서 정말 한판 재밌게 놀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쇼케이스 이후에 개선하거나 발전시키고 싶은 부분을 발견했나?
김혜성 작품의 밝고 재밌는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어두운 부분도 우울하지만은 않게 드러내면 좋을 듯하다. 할머니들이 어릴 때 한글을 배우지 못한 속사정이 있지 않나. 우리 할머니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셔서 한글은 잘 모르지만 일본말은 잘하신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과도 연결돼 있다. 이런 내용과 노래를 보완한다면 밝은 부분이 한층 더 도드라져 보일 것이다. 
김하진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석구와 고은 캐릭터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역할로 존재한다. 앞으로는 두 세대를 어떻게 엮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석구와 고은이 할머니들에게서 지혜를 얻거나, 아직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할머니들도 젊은이들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갈 수도 있다. 

 

앞으로 ‘나이가 들어도’ 가져갈 창작자로서의 목표를 듣고 싶다.
김하진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쇼케이스를 준비하면서 내가 위로받았던 것처럼, 관객의 마음도 위로할 수 있는 밝은 글을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다. 오늘 되게 힘든데 그 작품이나 봐야겠다, 관객이 이런 생각으로 내 작품을 보러와 준다면 기쁠 것이다. 
김혜성 살면서 정말 많은 시도를 했는데 다 실패였다. 인생이 그렇지 않나.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길게 보면 누군가에겐 그 고난이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게 성공보다 더 큰 걸 가져다주기도 하니까. 나는 열정 부자이기 때문에 실패해도 계속 도전할 것이다. 죽기 전까지 창작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인생작을 60세에 만날지 90세에 만날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날을 위해 늘 준비하고 지금을 제일 즐기는 창작자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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