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메리 셸리>

<메리 셸리> 테이블 리딩 현장
일시: 2020년 7월 22일(수) 13시 40분~15시 40분
장소: 동국대학교 원흥관 3층 I-Space
연출: 오루피나 
출연: 김려원(메리 셸리), 에녹(사내), 임강성(퍼시 셸리), 박란주(클레어), 문경초(바이런), 김찬종(존 폴리도리)
참관: 추정화 연출, 강병원 라이브㈜ 대표, 박병성 더뮤지컬 국장

 

 

<메리 셸리>의 테이블 리딩은 어느 정도 인물과 상황에 이입한 리딩으로 이루어졌다. <메리 셸리>는 ‘거울’, ‘햇살이 내리네’, ‘엄마, 안녕’ 세 곡을 시현했다. 테이블 리딩 대본은 메리 셸리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존과 바이런 등과 모여 소설을 쓰게 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재연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처음 대본에서는 책의 주인공을 프랑켄슈타인과 괴물 중 누구로 할 것인가를 두고 남편인 퍼시와 메리가 대립하지만, 테이블 리딩 대본에서는 그 부분이 빠졌다. 대신 존과 클레어의 관계 등 주변 인물의 비중이 높아졌다.

 

 

캐릭터의 욕망을 좀 더 명확하게
배우1: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파악되지 않았다.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배우2: 작품 제목이 <메리 셸리>이기 때문에 이 인물을 재조명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메리 셸리의 변화나 행동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바이런은 클레어를 임신시키고 책임지지 않는다. 당시 시대상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캐릭터란 생각은 들지만 요즘 시대에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부담이다.

 

배우3: 작품을 파악하기 위해 인물의 목적이나 욕망이 무엇인지 찾는데, 사내의 목적이나 욕망이 뭔지 모르겠다. 사내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일수록 목적과 욕망이 분명해야 한다. 극 초반에 사내는 메리에게 자기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고, 메리는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 여기서 사내의 목적이 이루어진 느낌이 들어서 최종적으로 사내가 원하는 게 뭘까 궁금해졌다. 메리가 남편 이름으로 소설을 출판한 것에 대해 메리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데 사내는 부정당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도 명확했으면 좋겠다. 메리는 진취적인 인물 같았는데, 나중에 존이나 클레어의 말에 따라 결정을 하니까 수동적으로 느껴졌다. 차라리 사내를 악당으로 만들고 이와 대립하는 위치에 메리를 두면 메리의 캐릭터가 오히려 더 분명하지 않았을까. 

 

배우4: 마지막에 클레어가 갑자기 긴 노래를 부르는데, 작품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배우를 섭외했으니까 노래 하나를 주어야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클레어라는 인물이 메리의 지지자 정도로만 느껴졌다. 인물 소개에 나온 문구가 전부인 평이한 인물이다. 배우로서 인물을 연구할 거리가 없다. 클레어와 바이런과의 상황은 편지 한 줄로 정리된다. 그마저도 곡이 나오는 사이에 나와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다. 바이런과 클레어의 관계가 좀 더 인지되어야 관객들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 같다. 

 

배우5: 메리 셸리가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길 바랐는데 오히려 끌려다니는 모습이 많았다. 남편이 제안한 출판 결정에 동의하고 괴물이 책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메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별로 없다. 

 

배우6: 관객 입장에서 본다면 메리와 퍼시의 이야기는 불륜녀의 성장 스토리이다. 앞부분에 메리만 오해를 받고 비난을 받는 장면이 있어야 관객에게 동정을 끌어내지 않을까. 죽은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깊게 다루지 않을 거라면 빼는 게 나을 것 같다.

 

 

작품의 본질에 충실하라
참관1: 메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왜 썼을까, 이것이 분명하지 않아서 메리가 멋있게 보이지 않는다. 메리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해서 프랑켄슈타인을 썼다고 생각한다. 사랑해서 불륜을 저질렀고 퍼시의 아내는 자살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는데 죽는다. 사랑을 이루려고 했던 많은 일들이 메리를 괴물로 만든다. 메리가 괴물과 동일시되었을 때 이 작품의 가치가 생길 것 같다. 시체가 살아난 것만 괴물이 아니다. 보편적인 상식에서 어긋난 선택을 한 존재도 괴물이다. 작품에서 번개가 신의 체벌이라고 말한다. 메리는 신의 체벌을 이용해 인간을 만든다. 이런 설정이 재미있었다. 박사가 괴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여기서도 사내라고만 나온다. 메리가 작품을 발표하려 하자 이름을 빼라고 한다. 괴물과 메리의 상황이 일치된다. 그런데 지금은 실존 인물들의 삶을 쫓아가다 보니까 처음 이야기에 담으려고 했던 핵심을 놓치고 말았다. 

 

참관2: 베르나르 책 중에 ‘죽음’이라는 책이 있다. 여기에 메리 셸리에 얽힌 일화가 나온다. 프랑켄슈타인 이전에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한 과학자가 살인자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는데 메리 셸리가 공개 시현하는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실제 팩트를 좀 더 보완하면 좋겠다. 주인공이 잘 안 보인다. 프랑켄슈타인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도 왜 이런 실험을 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해 주면 좋겠다. 오늘 들은 넘버 세 곡 중에 한 곡은 너무 복잡했다. 장면을 위해서 스타일이나 멜로디를 단순하게 해서 대사가 더 잘 들려야 할 때도 있다. 음악과 텍스트가 잘 어울리는지를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참관3: 작년 동국대 쇼케이스 포스터를 봤다. 2미터 거구와 소녀가 손잡고 있는 포스터가 인상 깊었다. 그게 작품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영화 <메리 셸리>랑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메리 셸리가 왜 괴물을 만들어 냈는지 보여야 한다. 자아가 성장하면서 자기 이름을 찾는 과정이 드러나야 할 것 같다.

 

참관4: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굳이 재연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을 했다. 소설의 재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메리 셸리에 주목해야 한다. 메리 셸리가 작품 안에서 괴물을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입장을 취하기도 하고 괴물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 관계를 명확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참관1: 메리 셸리의 정확한 트라우마 포인트가 필요하다. 지금은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혼자 글을 읽었다 등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것이 괴물과 동일시된다. 메리로 인해 아이나, 퍼시, 퍼시의 아내가 죽었다는 게 트라우마인지, 아니면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인지 포인트가 명확하면 좋겠다. 물론 둘 다일 수 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트라우마 포인트가 있어야 메리가 글을 쓰겠다는 목표와 반응의 단계가 명확해진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재연하는 장면에 자신을 반영한 인물로 누더기 같은 괴물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메리의 트라우마가 드러난다면 훨씬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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