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금오신화>

뮤지컬 <금오신화> 2차 극작 멘토링
일정: 2020년 8월 26일(수) 15시~17시 
장소: 라이브㈜ 사무실
멘토: 오은희 작가
멘티: 서휘원 작가

 

오은희 멘토는 테이블 리딩 버전에 비해 전반적으로 랑과 현의 비중이 줄고 김시습에 집중되면서 이야기 진행이 편해졌다고 수정본을 평했다. 단지 아직 이 작품을 쓰는 의의가 명확하지 않아 이야기의 힘이 떨어진다며 이 작품의 의미를 명확히 할 것을 주문했다. 

 

극작의 취지
<금오신화>의 이야기 자체엔 별것 없다. <금오신화> 전체를 다 보여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쓴 이유에 집중해야 한다. 김시습이 쓴 글은 새로운 이야기이다. 제목도 ‘金鰲新話(금오산에서 지은 새로운 이야기)’이다. 한문으로 쓴 것은 지식층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였다. 불교와 도가가 결합되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전까지는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제출한 수정본에도 왜 김시습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이유가 없다. 

 

역사적인 상황 안에서 김시습을 보면, 그는 사육신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이다. 지옥 편을 심플하게 생각하면 현실에서 단죄하지 못한 걸 글에서 단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육신으로 스님처럼 살았던 그의 삶과 소설의 내용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용궁부연록’은 용궁을 배경으로 한다. 김시습에게 용궁은 어떤 곳이었을까. 글을 잘 보면 용궁에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있다. 용궁이 뉴 월드이다. 지옥이 현실을 단죄하는 곳이라면 용궁은 그들이 추구한 이상이 있는 김시습이 꿈꾸는 나라이다. 당시는 유교가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유교와는 다른 가치를 담은 세상을 용궁에 담아내면 시습이 꿈꾸는 세상이 보이지 않을까. 

 

‘취유부벽정기’의 배경을 요양원으로 했다. (작가 왈, 망한 나라를 추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장면으로 꾸미려다 보니 요양원으로 설정했다) 요양원은 추억, 되새김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게 한다. 요양원이면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의사가 떠오른다. 전체적으로 SF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전체 톤과 어울리지 않는다. 남양주 용궁은 아쿠아리움 같은 느낌을 준다거나, 지옥은 제철소 같은 느낌을 주면 확실한 볼거리가 생긴다. 요양원은 비주얼적인 매력이 떨어진다. 

 

 

구성에 대해
지금 수정본은 6장 용궁 이야기가 사극에서 판타지로 갑자기 변하다 보니 전체적인 극의 호흡이 깨진다. 옴니버스 형식의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인물의 깊이가 쌓이거나 발전하지 않는다. 지금의 구성으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습의 분열된 자아의 컨셉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뒷부분 10~13장은 이중 자아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많이 쓸 필요가 없다. 요즘 극엔 이중 자아 캐릭터가 너무 많이 등장해서 이젠 관객들도 금방 눈치챈다. 

 

시습의 또 다른 자아인 현을 버릴 수 없다면 현이 시습의 역전된 모습으로 드러나도 좋을 것 같다. 위축되어 있는 인물 시습을 대신해서 밖으로 나가는 인물로 현을 설정하면 어떨까. 관객들에게 궁금함을 주기 위해 시습으로 하지 말고 못 벗어나는 인물의 이름을 매월당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구시대의 시습은 매월당으로 남아있겠지만, 패기 넘치는 시습은 현으로 세상에 나가 바꾸는 것이다. 

 

인물에 대해 
김시습은 소설을 통해 대결하는 적극적인 인물이다. 지금 대본의 시습은 너무 정체되어 있다. 좀 더 역동적이고 패기 있는 인물로 만들면 좋겠다. 관에서 보기엔 그가 방랑하고 자포자기한 듯 보이지만 운종가에서 그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선비들과 유교 정신에 반대하는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시습의 첫사랑으로 랑이 등장한다. 이중자아의 트릭을 위한 인물로 이용된다. 차라리 랑이 한 맺힌 귀신이면 어떨까. 홍건적의 난 때 죽임을 당한 여인. 남들이 볼 때 김시습 혼자인데, 무대에는 김시습과 또 다른 자아, 그리고 귀신이 있는 기기묘묘한 상황이라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시습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으로 랑을 설정한다면 음악적으로도 더 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올 것 같다. 

 

주변 인물 활용이 너무 없다. 주연 3명 빼고 4명을 앙상블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의 역할이 너무 없다. <금오신화>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노래도 가능할 것 같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연구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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