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5

창작특강 – 뮤지컬의 드라마와 캐릭터에 따른 음악 창작 과정
일시: 2020년 8월 4일(월) 16시 20분~17시 40분
장소: 동국대학교 원흥관 I-Space
강사: 민찬홍 작곡가

 

 

민찬홍 작곡가의 강의는 창작자의 질문을 먼저 들은 후 본인의 작업을 통해 대답을 해나가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시대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이번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5 작품 중에도 시대물이 많다. 시대 분위기를 어떻게 음악에 반영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할 것이다. <랭보>를 예로 들어 보겠다.

 

<랭보>는 본 공연까지 3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쇼케이스를 두 번 정도 했다. 처음 써놓은 곡들은 정말 내가 보기에도 부끄럽고 형편없는 곡들이 많았다. 뮤지컬의 모든 작곡 작업이 부족한 곡에서부터 마음에 드는 곡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시대적인 색깔을 담아서 작업해 보려고 했다. 처음에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같은 예술가곡의 영향을 받아 작업했다. 노래 선율은 가사의 억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가사를 잘 살려주려고 했다. 작가님이 시의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시키고 노래에 어울리도록 가사 각색을 잘해주셨다. 시를 읽으니까 러브 발라드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유럽 예술가곡 스타일로 시작했지만 서서히 내 스타일을 담아냈다. 

 

작품마다 노래 전체의 기준이 되는 넘버가 있다. 그 넘버를 만나는 순간까지 고행의 연속이다. 그 곡을 만나고 나면 힘들어도 작업 진행이 된다. <랭보>에서 기준이 되는 곡은 베를렌느 시로 쓴 ‘하얀 달’이었다. ‘하얀 달’을 작곡하고 이 작품은 이 색깔로 가면 되겠다 싶었다.

 

<랭보>의 가장 큰 관문은 가사였다. 작품의 전체 컨셉이 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베를렌느의 시는 서정적이다. 번역한 시라도 바로 노래에 잘 붙을 정도로 좋은 가사였다. 반면 랭보의 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더라. 문장이 길고, 알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주석을 열심히 공부하고 3년 동안 매달렸더니 손톱만큼 이해가 갔다. 랭보의 시를 어떻게 노래로 만들 것인가가 큰 관건이었다.

 

<랭보> 넘버는 곡을 붙이기 쉬운 베를렌느 시를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랭보를 드러내는 넘버는 랭보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했다. 랭보의 시 중에는 혁신적이고 광기 어린 시가 많은데, 번역을 하면 단어의 뉘앙스나 운율을 살릴 수 없는 게 많았다. 두 번의 쇼케이스 동안 랭보 시를 노래로 만드는 작업은 다 실패했다. 랭보가 자신을 소개하는 핵심적인 넘버는 ‘취한 배’이다. 쇼케이스 때는 장황한 시를 4/4박자로 만들려고 했더니 잘 맞지 않았다. 또 강렬함을 표현하려고 강조하다 보니 이전까지는 실내악이었던 음악이 심포니로 나오더라.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우선 박자를 11/8박자로 바꿨다. 문장이 길어졌을 때 리듬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제작진에서 랭보 넘버만 록 스타일로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못 받아들였다. 곡 스타일을 한 번 정해 버리면 바꾸기가 쉽지 않아 신중해야 했다. 랭보 넘버에서 터닝 포인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은 동감하는 바였다. 록까지는 아니고 팝적인 느낌을 주어서 클래식한 음악과 대비를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취한 배’ 앞부분에 기타 리프를 넣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렇게 겨우겨우 랭보를 대표하는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랭보와 비슷한 음악이 나온 것 같아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시대적 색깔을 지운 작업
뮤지컬 <렛 미 플라이>는 1969년에 살던 청년이 하루아침에 노인이 된 이야기를 그린 코믹 판타지다. 1960년대 음악을 참고해서 써보려고도 했다. 작품하고 잘 맞지 않았다. 판타지 성격이 강하고 동화적인 요소도 있어서 시대성을 살리는 것보다 음악 장르를 강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 인물을 노인과 젊은 시절로 나누어 두 배우가 연기했다. 70대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마침 그때 <미스터 트롯>이 큰 인기를 끌던 때라 트로트로 가자는 압박을 많이 받았다. 트로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노인 세대는 다양한 음악으로 표현했는데 심지어 힙합이나 R&B도 사용했다. <렛 미 플라이>는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며 살아온 70세 노인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노인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R&B나 힙합을 사용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의미로 노인의 목소리로 부르지 않았다. 

 

‘미래 탐사’라는 곡은 자아가 분열된 노인과 청년의 듀엣곡이다. ‘미치겠네’라는 곡은 무언가 홀린 듯 알지 못하는 버릇을 반복하는 코믹한 상황을 보여주는 노래이다. 둘 다 코믹한 상황이 펼쳐지는 넘버인데, 작가님이 극 후반에 ‘미래 탐사’와 ‘미치겠네’를 섞어서 리프라이즈를 하게 만들어 놓았다. 코미디 송으로 사용했던 곡을 드라마에 깊숙이 연결해서 주제를 강화하는 노래가 되었다. 작곡가로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는데 괜찮은 시도였던 것 같다. 리프라이즈를 통해 주제를 강화하는 시도는 극작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잃어버린 얼굴 1895> 역시 음악적으로 시대 분위기를 구현하기보다는 인물의 군상을 통해 현대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작품이었다. 당시 시대적, 지역적 색을 많이 지우고, 클래식하면서도 유럽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시도했다. 작품 중에 전봉준이 부르는 ‘새야 새야’가 두 번 반복된다. 20세기 초기 현대음악 스타일의 대합창곡으로 만들었다. 

 

 

민찬홍 작곡가는 세 편의 작품으로 충분히 대답이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창작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별도 코멘트를 해주었다.

 

작가와 작곡가의 협업 과정에 대한 질문에는 “좋은 뮤지컬이 나오려면 음악이 빛나야 한다. 이야기나 연기만 부각되고 좋은 음악이 안 나오면 작품이 오래 가기 힘들다. 음악의 생사가 작품의 생사와 관련이 있다. 음악이 좋으려면 가사가 좋아야 하고 작업 과정에서 작가와 작곡가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글로 가득 차 있는 대본은 음악이 표현할 자리가 없다.”고 답변했다. 

 

다작을 하는데도 한결같은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는 “6~7년 전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품을 얼마나 즐겁게 작업하느냐이다. 즐겁게 작업하려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왜 하려고 하는지 되돌아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작품을 계속 쓰기만 하면 즐거움을 놓칠 때가 있다. 즐거움을 찾을 때 좋은 작업과 연결된다. 작품을 꾸준히 하는 원동력은 건강 관리와 체력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다. 작품 이전에 건강과 체력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작업을 해도 무리가 올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창작의 심리적 체력적 고충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