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3

 

일시: 2018년 10월 17일 15시~16시 30분
장소: 동국대학교 혜화별관 302호
강사: 서윤미 연출가

 

‘뮤지컬 작법과 무대화’라는 제목으로 강연에 나선 서윤미 연출은 “창작에 정답은 없지만 이 업계에 종사하며 깨닫게 된 것들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늘은 그동안 일하며 느낀 점을 중심으로 강연을 하러 왔다”며 <블랙메리포핀스>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극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 뒤, 무대화를 고려한 작법에 관해 강연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하고 어떤 장르로 이야기할지 생각하라
창작의 첫걸음은 자신이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로서 자신이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물음이자 글을 쓰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서윤미 연출은 자신의 경우 ‘상처받은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는가” 가 물음의 시작이었고 “그렇다면 진짜 행복이라는 게 뭔데?’에 대한 대답이 ‘<블랙메리포핀스> 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했다고 해서 무조건 공연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연에 적합한지, 왜 공연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하필 공연으로 만들었을 때의 매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서윤미 연출은 “이전에 아동 성추행 피해 아동과 부모들이 가면을 쓰고 역할극을 하면서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작업해봤지만 '객관화'의 카메라를 통해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 쉽지 않았다.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의미 있지만 관객이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상처 위에도 행복이 자랄 수 있음을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며 공감의 매력이 극대화되었을 때, 관객들도 극중 인물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자신의 상처를 다독이는 과정에서 이 공연의 매력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했다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를 고민한다
서윤미 연출은 ‘상처가 없으면 행복한 것인가? 상처가 있다면 지워버리는 게 나은가 아니면 고통을 겪더라도 치유하는 것이 나을까? 상처의 기억들을 어떻게 안고 갈 것인가?’ 등등 꼬리를 물고 생각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처의 외피인 ‘기억’이 소재로 이어졌고 기억의 특징들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큰 형식 역시 ‘기억’의 습성과 닮은 모네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연작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모네의 연작은 하나의 작품으로도 완성된 형태지만 여러 작품을 함께 봤을 때 ‘빛에 따라 모든 사물의 모습이 변화한다’는 큰 주제가 드러난다. 기억은 계속 덧입혀지고 변형된다는 점, 빛의 각도에 따라 실체의 인상이 바뀌듯 인물과 상황에 따라 기억도 다를 수 있다는 점 등을 형식적 컨셉으로 잡았다. 사건에 대한 무의식적 죄의식이 만들어낸 상처를 ‘기억해내려는’ 한스, ‘기억하지 않으려는’ 헤르만, ‘기억하고 있는’ 요나스를 통해 최면 속에서 진술하게 하고 가장 먼저 성숙한 안나가 최종 형식 틀인 <안나의 방>에서 오랜 최면을 깨며 4명의 아이를 해방으로 인도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왜 더이상 자기 자신만의 상처에만 함몰되지 않고 다른 이의 상처도 바라보고 어루만질 수 있게 되는지, 왜 기억을 지우지 않고도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 서로를 지켜주려고 했던 기억이 왜 불행했던 기억보다 소중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어둠 속에도 빛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상처 위에도 얼마든지 다시 행복이 다시 생겨날 수 있음을, 트라우마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내며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마다 무의식 속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가둔 채 웃으며 살아온 우리네들을 위로해주는 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서윤미 연출은 이처럼 여러 모양으로 변주되는 “기억”들을 하나의 큰 틀 속에 묶어 그 속의 상처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것을 정하면서 ‘블랙메리포핀스’라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생각했다. <블랙메리포핀스>의 ‘블랙’은 기억의 특성을 말한다. 이때의 기억은 어둠 저편에 있는, 최면을 통해서나 끌어낼 수 있을 듯한 무의식 속 심연의 기억이다. 그 이야기가 어두울 수 있으니 밝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역설적 장치가 필요했고 ‘메리 포핀스’라는 동화의 모티브에 이야기를 넣기로 했다. 그러면서 인물들의 직업,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는지, 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그들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선택을 할지, 치유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질지 등의 세부적인 스토리텔링을 짰다. 

 

배경을 독일로 정한 것은 “한국 사의 어떤 특정 사건보다 오히려 더 먼 이야기를 가져옴으로 관객들이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해주길 바랐다” 고 이유를 밝혔다. 게다가 독일 나치 정권 하의 시대는 기억의 작위적인 삭제가 가능할 만큼 큰 힘이 인간의 존엄한 주체성을 침해할 수 있었던 시기였고, ‘옳음’에 대한 잘못된 정의와 신념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인간을 위한다면서 인간을 실험하고 실험이 실패하면 폐기 처분할 수도 있는 상황들이 지금의 모습과 결국 다르지 않은 보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괴벨스, 히틀러, 프로이트 등이 정치적, 이론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이러한 실험이 자행될 수 있음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들은 주로 실제 인물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데 안나의 경우 안나 프로이트를 모티브로 했다. 프로이트라는 기성세대이자 아버지 프로이트보다 조금 더 나아간 인물이다. 상처 즉, 트라우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의 상처로부터 스스로 저항하는 방어기제를 연구한 인물이기 때문에 ‘상처’라는 방에서 해방되어 이타, 승화 등의 성숙한 방어기제를 통해 행복으로 ‘나아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 적합한 배경으로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감동을 기준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라
그런데 극작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문학” 범주의 콘텐츠가 사실 고발이 목적이 아니라 ‘감동’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이야기가 풍성하게 벌려졌으면 다음은 삭제다. 감동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온다. 그 때문에 장면 별로 관객의 마음에서 장면을 바라보며 중요한 장면들을 감동을 기준으로 취사 선택해가면서 주제를 구심점으로 다시 “압축” 해 나가야 한다. 

 

서윤미 연출은 또 “대중문화 창작은 순수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예술과 상업적 책임감 사이에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집요하게 잡되, 대중적으로도 공감 받을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공연을 선택한 이상,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들고 많은 사람과 공감해야 하는 예술이다. 자신의 작품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여러 지점에서 고민해야 하는데 헷갈릴 때는 그 기준을 ‘감동’으로 삼으라고 강조했다.

 

무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
서윤미 연출은 극문학은 소설보다 갈등을 극대화해서 해결해가는 장르라며 갈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다. 자신의 작품에서 갈등이 무엇인지 한 줄로 요약해 이야기하려 해보고, 이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는지도 잘 계산해서 정해야 한다. 갈등은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끼리 만들어질 뿐 아니라 극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도 갈등적 상황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짤 때는 극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의 캐릭터도 꼼꼼하게 짜 주어야 한다. <블랙메리포핀스>의 경우 한스와 헤르만이 극 내부에서 기억을 꺼낼지 말지에 대한 대립선을 가지는 갈등 축을 담당하며 극의 긴장을 만들어주고 극 외부에 메리와 그란첸 박사의 갈등,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야 하고,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의 주체성을 빼앗아간 거대한 존재들과의 갈등. 이런 갈등 요소와 해결 과정이 모두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연출하기 좋은 극본이 가장 좋은 극본
뮤지컬인 만큼 무대화에 있어 음악에 대한 고려도 매우 중요하다. 뮤지컬 대본은 극본과 음악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야 하므로 작가는 어떤 부분에서 BGM이 깔리고 어떤 부분에서 멈출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계산해야 한다. 구조를 잘 짜두면 작곡가가 좋은 음악을 작곡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극작을 할 땐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레퍼런스로 들으면서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서윤미 연출은 “뮤지컬 작가는 가장 좋은 것들을 음악에 넘겨줘야 한다”며 “이야기를 치밀하게 다 적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음악에 양보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덧붙여 “우리는 배우가 연기하게 판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본으로 쓰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신명 나게 연기하며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판을 짜줘야 한다. 나의 대사보다 배우의 뒷모습이 더 극을 잘 전달할 수 있다면 가슴 아파도 과감히 양보해야 한다. 텍스트로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의 공연을 올릴 대본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명과 무대 전환도 다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라며 작품이 연습실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배우의 역량과 작품 개발 진행 상황에 따라 대본을 유연하게 바꿀 줄도 알아야 한다. 단, 확고한 인물의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배경지식은 연출과 배우를 비롯한 창작자들이 질문할 때 언제나 막힘없이 대답해 줄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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